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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미니멀리즘

알고리즘 없는 일주일, 디지털 미니멀리즘으로 회복한 선택의 감각

by mynote1662 2025. 7. 2.

스마트폰을 포함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크린을 켰을 때 정보가 나에게 쏟아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 이상은 있을 것이다.
익숙한 로고와 부드러운 화면 전환, 자동으로 재생되는 영상,
방금까지 내가 관심 있게 보았던 콘텐츠를 기억하고 관련 있는 것들을 추천하는 정교한 알고리즘.
처음엔 마냥 신기하고 편리하기만 했다. 기계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아 신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스스로 정보를 찾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것들 중에서 나는 고르기만 한 것이었다.
아침에 유튜브 앱을 켜면 어떠한 영상을 보려는 계획이 없었는데도 20분이 쉽게 지나간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우면, 내가 오늘 하루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은 흐릿한데, 피곤함만 또렷하게 남는다.

그래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보다 정보는 훨씬 많아졌는데 판단력은 흐릿해지고,
옵션은 넘쳐나는데 선택은 점점 어려워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정보가 나에게 도달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실험을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어떤 플랫폼에서도 추천 콘텐츠 없이 살아보기.

알고리즘 없는 일주일 디지털 미니멀리즘으로 선택 감각 회복하기

정보는 줄지 않는데 감각은 피로해지는 이유

디지털 환경은 사용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사용자의 모든 선택은 선택의 타이밍과 구조를 결정짓는 알고리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영상 플랫폼의 추천 목록, 음악 앱의 자동 재생, 뉴스 피드의 개인화 큐레이션,
쇼핑몰 사이트의 추천 상품까지…
모든 플랫폼은 사용자가 ‘결정하지 않아도’ 소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행위가 반복되고 누적되면 우리의 뇌는 선택 자체를 귀찮아하게 된다.
이렇게 선택을 디지털에 위임하는 데 익숙해지면,
스스로 무엇을 원했는지보다 디지털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를 먼저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는 이 구조가 사용자의 정보 소비를 끝없이 자극하면서
주의력이 회복될 시간을 없애 버린다는 점이다.
무엇을 볼지, 언제 멈출지, 얼마나 봤는지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자는 모든 감각이 열려 있는 상태로 콘텐츠의 흐름에 끌려다니게 된다.

이러한 감각 피로는 단순히 눈만 피로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의 소실, 정보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감정,
그리고 ‘원하지 않았는데 소비하게 되는 경험’에서 오는 무기력감
이다.

그 무기력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콘텐츠 보는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추천 알고리즘을 차단하는 구조 실험을 해 보기로 결심했다.

 

실험 구조: 일주일간 무추천 콘텐츠 환경 만들기

실험 목표는 ‘아예 디지털을 끊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콘텐츠를 ‘스스로 찾아보고 선택하는 구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전에 다음과 같은 환경을 세팅했다.

  • 유튜브 로그인 해제 + ‘홈’과 ‘추천 영상’ 숨김용 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 설치
  •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 사용 금지, 대신 미리 다운로드 해 둔 콘텐츠만 시청
  • 뉴스는 RSS 리더만 활용, 포털과 구글 뉴스 메인 접속 차단
  • SNS 사용 중단 대신, 웹 링크 기반의 블로그·칼럼만 직접 접근
  • 스포티파이는 추천 리스트 차단 → 내가 저장한 앨범만 수동 재생

이 실험의 핵심은 ‘콘텐츠를 보기 전에 내가 먼저 콘텐츠를 보려는 목적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싶은가? 왜 지금 그것을 보려는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콘텐츠만 소비하기로 했다.

물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귀찮았다.
특히 피곤할 때,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릴스나 볼까?’와 같은 자동 반응을 내가 막아야 했다.
하지만 3일 정도가 지나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정보를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스스로 편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정보는 사라졌는데 생각은 살아났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추천 콘텐츠 없이 하루를 보내는 일은
‘내가 무엇을 보고 싶은지를 다시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과거에는 영상을 클릭, 터치하면서도 그 영상이 왜 보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 영상이 내 피드에 떴고, 영상의 길이가 짧았고, 자동 재생됐기 때문에
‘그냥 본 것’이었다.
그러나 추천 없이 콘텐츠를 소비하려면 내가 먼저 목적을 가져야 했다.

읽고 싶은 책, 듣고 싶은 음악, 궁금한 주제.
이런 것들을 내가 먼저 떠올려야 콘텐츠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고,
어떤 감정 상태일 때 무엇을 보려 하는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의외의 수확도 있었다.
보고 싶은 것이 딱히 없을 땐, 그냥 아무것도 보지 않게 되었다는 점.
과거에는 피드가 시선을 끌어 강제 소비를 유도했지만,
지금 내 피드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기 때문에 무작위로 뜨는 정보를 소비하는 대신

산책하거나, 창밖을 보거나, 노트를 펼치는 등의 ‘비스크린적 선택’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즉, 추천을 차단했을 뿐인데
‘원래 내가 하던 행동의 순서’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선택이 회복되면 감정도 명료해진다

이 실험의 가장 큰 변화는 ‘정보 소비를 통제했다’는 데서 오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 기복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추천된 콘텐츠는 사용자들의 감정에 개입한다.
감동적인 영상을 보고 나면 뒤이어 슬픈 사연이 뜨고,
분노를 자극하는 뉴스 뒤에는 누군가의 논쟁 영상이 자동으로 붙는다.
이런 구조는 감정을 ‘빠르게 전환시키는 흐름’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사용자가 그 감정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단편적인 자극에만 노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천 콘텐츠가 사라지면
감정이 연결되고, 멈추고, 정리되는 과정이 생긴다.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할 땐 디지털 기기를 끄고 누울 수 있었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땐 생각을 글로 적어 보거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걸을 수 있었다.

정보를 통제하면 감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정보에 의해 조작되는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 것이다.

 

콘텐츠를 줄이기 전에, 추천을 끊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 피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쏟아지는 정보량을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보가 우리에게 ‘어떻게 제시되느냐’가 더 결정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기기를 끊는 기술이 아니라
정보 흐름을 설계하는 감각의 복원이다.
그 시작은 단순하다.

  • 자동 재생을 끄고,
  • 홈 피드를 비우고,
  • 내가 이 콘텐츠를 ‘왜 보려 하는가’를 자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이 단순한 변화만으로도 우리는 피로가 줄어들고,
선택할 수 있게 되며, 정보가 감정을 흔드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을 볼 것인지를 묻기 전에,
왜 그것이 나에게 보였는지를 먼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그 질문을 회복하는 연습이다.
그리고 그 연습은, 추천 콘텐츠가 사라진 아주 조용한 홈화면에서 시작된다.